2023. 10. 14.

얄팍한 결심으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일요일을 오래간만에 기록했습니다. 그동안 일요일에는 기록을 잘 남기지 않았어요. 매일 기록을 남기는 일에 지쳐서 일주일에 한번은 쉬어도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면 반대로 일요일에 기록을 남겨봐도 또 괜찮지 않을까요?

2024. 02. 18.,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87 체인지업그라운드포항 2층.

블로그를 시작한 뒤로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루틴이 정형화되었습니다. 매일 조금씩 일기를 적어두었다가 일요일에 카페에서 일주일 치 기록을 정리합니다. 매일 짤막하게 휘갈긴 단어들을 모아서 그 때의 감정을 떠올리고 문장을 다시 만들어요. 이 과정에서 테라로사가 주로 소비됩니다. 글을 써야겠다는 얄팍한 결심으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속하거든요. 결심이 흩어지기 전에 일을 시작하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테라로사에 태우도 왔어요. 자주 온다고 하더라고요. 따라서 동하도 왔어요. 저녁에 만나기로 했었거든요.

2024. 02. 18.,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5번길 6.

동하는 드디어 학교에 왔습니다. 전역하자마자 단기유학을 가서 오랜 기간 동안 캠퍼스를 떠나있었습니다. 학교로 돌아온 김에 분반에서 그나마 친한 사람들끼리 모였습니다. 효동피자에 갔어요. 피자 3판에 파스타 한 접시를 먹었습니다. 칼조네는 언제 먹어도 참 맛있는 것 같아요. 식사를 마치고 카페라도 갈까 생각했는데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아서 그냥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빨리 파해서 다행이었습니다.

2024. 02. 18., 경북 포항시 남구 중흥로 77.

밤에는 “중경삼림”을 봤습니다. 2021년인가 2022년에 영화관에서 처음 보고 벼락 맞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아빠와 함께 봤었는데 나에게 미동도 없이 영화에 집중하는 사람은 처음봤다고 그랬어요. 처음 접해본 스타일의 영화에 동화되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후로도 VOD를 꽤나 돌려봤습니다. 메가박스에서 재개봉 된 3편의 왕가위 영화들을 모두 봐야겠다는 결심을 세우는 데에는 “중경삼림”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장치들, 특히 공간이 주의 깊게 이용되었습니다. ‘Midnight Express’와 ‘편의점’은 극을 이끌어나가는 주요 장소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두 이야기 모두에서 집요하게 등장하여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킵니다. 극 진행에 있어서 공간에 대한 집착은 두번째 이야기에서 663의 공간이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심경의 변화를 드러내며 더욱 강조됩니다. 극 후반에는 캘리포니아라는 다소 비이성적인 공간 선정을 통해 이야기의 위기감을 극대화시켰고, 이는 다시 ‘Midnight Express’의 등장을 통해 소강되었습니다. 이러한 장소에 대한 집착은 제목을 “중경삼림”으로 설정함으로써 마무리됩니다.

「如果記憶是一個罐頭的話,我希望這一個罐頭不會過期;如果一定要加一個日子的話,我希望是一萬年。」의 올바른 번역은 “기억이 통조림에 들었다면 유통기한이 영영 끝나지 않기를. 만일 기한을 적는다면 만년 후로 해야겠다”겠습니다만 “만약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의역이 더 사랑스러운 것 같습니다.

학교로 돌아가는 산책로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비가 와서 그랬을까요. 금발 가발의 임청하를 생각하면서 산 미구엘을 한 캔 했습니다.

개강했습니다. 우리 학교는 여름방학이 3달이라 개강이 다른 학교들에 비해 빠릅니다. 조삼모사이지만 억울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어요. 개강도 했겠다 이제는 10시에 출근해야지 결심했었는데 하루만에 실패했습니다. 늦잠 잤어요. 어기적 나오는 길에 어떤 트럭 기사님이 길을 물어보셔서 알려드렸습니다. RIST 간다고 하시길래 길을 알려드렸는데 태워달라고 할 걸 후회한 건 트럭이 이미 떠나간 후 였습니다.

오늘은 연구실 운영과 관련해서 2시에 미팅이 있었어요. 신생 연구실이라 규칙이 아무것도 없어서 이런저런 기본적인 규칙들을 설정했습니다. 크게는 세미나와 랩 미팅 일정을 선정하였어요. 세미나를 돌아가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하기로 결정했는데, 한번 할 때 1명이 논문 2개를 준비해오기로 해서 벌써 걱정입니다. 심지어 지도 학생이 3명 뿐인데 말이죠. 첫 세미나는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 큰일났습니다.

2024. 02. 19.,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2024. 02. 19.,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대학원생 학생증을 우리은행에서 발급받아야하는데, 동기 분이 번호표를 2개 뽑아뒀다고 해서 기회를 잡으러 달려갔습니다. 번호표를 받아서 확인해보니 1시 40분 언저리에 뽑으셨더라고요. 도착했을 때 시간은 3시 반이었고 내 손에 학생증이 들어왔을 때 시간은 4시 반이었습니다. 은행에서 학생증을 받았을 때 인적 사항이나 사진이 인쇄되어 있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는데, 알고보니 학교 총무팀에서 그 위에 인쇄해준다고 하더라고요. 총무팀에서 학생증을 완성하고 출입 권한을 받았습니다. 번호표를 넉넉하게 뽑아둔 동기분에게 너무 감사했어요.

연구실에 돌아와서 꼼지락대다가 학식을 먹었습니다. 개강하니까 확실히 학식 줄이 깁니다. 저녁 학식은 사실 열리는 시간 맞춰서 가면 되는데 수업 있는 날 점심이 문제입니다. 학교에 학식은 하나 밖에 없는데 학교 시설을 함께 쓰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서 학식 줄이 너무 길어요. 언젠가는 해결되겠지요.

2024. 02. 19.,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대운동장. 2024. 02. 19.,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대운동장.

목요일 아침 미팅 전까지 결과가 나와야하는게 있어서 열심히 작업했습니다. 동아리방에서 코딩하다가 러닝 잠깐 하고 방 가서 또 코딩했어요. 미팅 전까지 결과를 뽑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후회했습니다. 나는 왜 1교시 수업의 끔찍함을 왜 항상 개강하고 나서 깨닫는걸까요. 수강신청 할 때에는 어차피 일주일에 두 번 뿐인데 할 수 있겠지라며 넘겨짚고 당일이 되어서야 후회하는 내 모습이 꽤나 바보같습니다. 그래도 이미 신청한 거 어쩌겠어요. 들어야지.

1교시에는 딥러닝을 들었어요. 오래간만의 수업에 영어를 듣는게 영 익숙치가 않아서 힘들었는데 알고보니 교수님이 박사 과정을 영국에서 하셨더라고요. 학부 영어 수업을 영국 교수님께 들으면서 영국 영어에 꽤나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교수님의 발음을 딸잡는데 많은 시간을 쓰게 될 것 같습니다. 2교시에는 같은 강의실에서 기계학습을 들었습니다. 빈 옆자리에 연구실 동기 분이 앉았습니다. 첫 시간이라 별 내용은 없어서 데이터를 뽑기 위한 코딩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동기 분은 열심히 노트 테이킹하면서 수업을 듣고 있었어서 미안했습니다.

2024. 02. 20.,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수업이 끝나고 동기 분이 리스트 식당에 같이 가보자고 제안했어요. 리모델링 한 이후로 가본 적이 없어서 제안을 덥석 수락했습니다. 리모델링하면서 시설이 깔끔해진건 마음에 들었지만 다시 가진 않으려고 합니다. 학식과 비슷한 퀄리티에 8,300원을 받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었어요. 그나마 저녁은 5,000원이라는데 점심 가격은 좀 아니다 싶었습니다.

아침에 제대로 씻지 못해서 방에 돌아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출근했어요. 누가봐도 저녁에 약속 있는 사람처럼 옷을 갈아입어서 약간 눈치가 보였습니다. 하지만 일을 열심히 하면 된 것 아닐까요. 미팅을 앞두고 완성된게 하나도 없어서 부랴부랴 코딩을 했습니다. 사실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다시 짤 필요는 없었는데, 욕심이 생겨서 다시 짜기 시작한 게 화근이겠습니다. 파이썬의 타입 시스템이 너무나도 미개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멱살잡이를 하다보니 약속시간이 되었습니다.

2024. 02. 20.,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 2 1층 102호.

본관 분수대 앞에서 만났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바로 아래층 연구실에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1층에서 만날걸. 무엇을 먹을지 정하지 않은 채로 냅다 걸어가다가 샤브로에 갔습니다. 요즘 많이 먹지 않아서 샤브샤브에 들어갈 재료들을 많이 추가하지 않았는데, 자기는 많이 추가해서 어쩌지 걱정하는 모습이 귀여웠어요. 이리저리 재밌는 대화를 나눴습니다. 오래간만에 봤으니까라고 하며 나에게 밥을 사줬어요. 밥 사주는 사람 최고.

모델을 돌릴 수 있을 만큼은 프로젝트가 완성되어서 실험을 돌려놓고 잠에 들었습니다.

10시 미팅 직전에 실험 결과를 보고 좌절했습니다. 실행은 되었는데 생성된 결과물이 없었어요. 꽤나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보고했고 긴장이 풀려서 잠깐 잠에 들었습니다. 일어나서는 생성이 되지 않는 이유를 계속 찾았고, 이것저것 설정을 수정하면서 원인을 알 수 있었습니다. Transformer를 쓰는 실험이다보니 Hugging Face의 라이브러리들을 많이 이용하고 있는데, HF의 코드 퀄리티가 좋지 못할 뿐더러 독스에 정의되어 있지 않은 동작이 너무 많아요. 이번에도 당했습니다. 딥러닝 생태계가 파이썬을 중심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21세기 인류 최악의 실수 중 하나가 아닐까요.

2024. 02. 21.,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유강길10번길 26-12. 2024. 02. 21.,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유강길10번길 26-12. 2024. 02. 21.,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유강길10번길 26-12.

원인을 제거하고 실험을 다시 돌려둔 채로 썸머쩡원와장무지렁을 만났어요. 오늘은 쩡원의 생일이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저녁 식사는 흑룡강에서 했어요. 깐풍새우, 사천탕수육, 쟁반짜장, 볶음밥을 먹었습니다. 중식은 식당에서 바로 먹는 요리가 참 맛있는 것 같아요. 중식당에서는 소스가 미리 부어져있는 탕수육조차도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2024. 02. 21., 경북 포항시 남구.

저녁을 먹고서는 무지렁이 그여행에서 픽업해온 딸기 케이크를 먹었습니다. 크림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케이크였는데, 크림이 정말 맛있었어요. 정말 좋은 우유를 많이 넣어서 만들었다는게 느껴졌습니다. 케이크를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고, 와장이 차를 사도록 부추기는데 성공했습니다. 내가 면허를 따지 못할 바에는 차가 있는 친구를 많이 만드는게 좋은 것 같습니다.

2024. 02. 21.,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 4.

친구들과 헤어지고는 혼자 코노에 갔어요. 10곡 정도만 하려고 했었습니다. 옆방 사람이 왜 데뷔 안했나 싶을 정도로 노래를 잘 불러서 언뜻 들리는대로 듣고 있었는데 내 선곡을 따라 부르고 계시더라고요. 내가 ‘있지’를 부르니까 옆에서 ‘이카루스’가 들렸어요. 나도 맞불을 놓았습니다. 나는 ‘피터의 노래’를 불렀어요. 옆 방이 뮤지컬 노래를 불렀고 나는 ‘데스노트’를 불렀어요. 옆 방도 ‘데스노트’를 불렀어요. 이게 생각보다 재밌어서 계획보다 몇 곡 더 불렀습니다. 마지막에는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는데 옆방에서 코러스를 넣어줘서 깜짝 놀랐습니다.

방에 돌아와서 고친 코드로 돌린 결과를 확인해봤는데 생성이 되긴 한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결과가 좋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트레이닝을 통해 좋아질 구석이 많다는 뜻으로 사료되었거든요. 다소 희망적인 미래가 보였습니다.

난 1교시가 너무 미워요. 아침에 일어나는데 너무 힘이 듭니다. 1교시 수업을 듣는 내내 교수님께 슬랙이 왔습니다. 어젯밤에 확인한 데이터를 리포지토리에 푸시해두었는데, 교수님이 들어가는 미팅에서 그 데이터 이야기를 하시려고 했나봐요. 데이터에 이상한 부분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이것저것 질문하시는데 답하기 대처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았습니다. 아직은 배울 내용이 한참 남은 것 같습니다.

2교시 수업이 같은 강의실이라 좋았는데 2교시 수업 수강 인원이 너무 많아져서 강의실이 LG연구동 강당으로 바뀌었어요. 귀찮은 일이 늘었습니다. LG연구동에서 수업을 듣는 것은 새내기 때 이후로 처음인데, 강당이 꽤 괜찮더라고요. 학부때 이런 곳을 알았다면 준비위원회 활동 할 때 잘 썼었을텐데.

데이터를 뽑아둔 채로 세미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정확히는 세미나 준비 준비에 가깝겠습니다. 발표 자료 템플릿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거든요. 학부생 때부터 Keynote로 만들어서 쓰던 발표자료 템플릿이 있는데, 도형이 많아서 손이 많이 가기도 하고 슬라이드 마스터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그 템플릿으로 앞으로 세미나를 준비하면 시간을 너무 잡아먹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Marp를 이용해서 마크다운으로 발표자료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썸머와 쩡원이 쓰는데 꽤나 괜찮아보이더라고요. 다만 기본 테마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CSS로 테마를 커스텀했습니다.

2024. 02. 22.,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대운동장. 2024. 02. 22.,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대운동장.

스타일링 작업을 하다가 태우를 만나서 러닝을 했어요. 매우 만족스러운 러닝이었습니다. 6km를 뛰었는데 지치지 않았어요. 페이스는 후반으로 갈수록 더 빨라졌고요. 최근에 러닝을 하면서 기록에 성장이 없어서 지루했는데 오래간만에 꽤나 재밌는 러닝을 즐겼습니다. 한편으로는 역시 탄수화물을 좀 먹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확실히 탄수화물을 많이 먹어준 날에 수행 능력이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2024. 02. 23.,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RIST 4동.

러닝이 끝나고는 동아리방에 돌아와서 스타일링을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급하게 동아리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동아리 뉴비 선발을 위해 해킹 문제들이 모여 있는 스터디 사이트를 오픈했는데, 어떤 새내기가 웹 문제들을 빠른 속도로 풀더라고요. 오픈해 둔 웹 문제들이 모자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랴부랴 컨테이너를 올리고 문제들을 더 오픈했습니다. 이미지들을 오래간만에 빌드하다보니 시간이 오래 걸려서 세미나 준비는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래간만에 괜찮아보이는 뉴비들이 한꺼번에 많이 보여서 마음이 들떴습니다.

오랜 재택근무를 끝내고 오래간만에 오피스에 출근했습니다. 학교에 새로 부임하신 보안 분야 교수님, 지도 교수님, 그리고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게 되었거든요. 처음에는 지도교수님이 동아리 사람들 보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새로 부임하신 교수님도 함께 보면 어떨까 여쭤봤습니다. 그게 어제였는데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어요.

2024. 02. 23., 경북 포항시 남구 형산강북로 81.

소우리갈비에서 소고기를 먹었어요. 인원이 열댓명이라 걱정했는데 식당이 커서 다행이었습니다. 교수님들과 동아리 사람들 사이에 접점이 저밖에 없어서 뭔가 이 자리를 주도해야 겠다는 허상에 휩싸였습니다. 많이 나댔어요. 평소답지 않게 두 그룹 사이의 이야기를 리드하려고 노력했는데 사람들이 불편하진 않았을지 걱정입니다. 그래도 교수님께서 대화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말씀하셨으니 어느정도 성공했다는 뜻이지 않았을까요. 식사 자리는 2시에 끝났습니다.

교수님과 원온원 미팅을 가졌어요. 교수님께서 오늘 자리 어레인지한다고 고생했다고 말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지금까지 한 내용 짤막하게 보고드리고 준비해 간 랜덤 아이디어 두 가지를 설명드렸는데 교수님께서 만족해하시는 눈치라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특히 두번째 아이디어에 대해 일리 있는 것 같다면서 관심을 많이 보이셨어요. 미팅 때마다 이것저것 던져본 랜덤 아이디어 중에서 교수님의 가장 반응이 좋았어서 너무 뿌듯했습니다.

스타일링을 마무리하고 세미나 때 쓸 발표자료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논문이 짧기도 했고, 특별한 내용이 없어서 금방 준비했어요.

오후 늦게 일어나서 스마트폰 좀 보다가 씻었습니다. 손톱 큐티클이 신경쓰이는데 니퍼로 자르기는 무서워서 어쩌지 하고 찾아보니까 펜 같은 형태의 큐티클 리무버가 있더라고요. 괜찮은 것 같아서 사봤는데, 효과가 그렇게 좋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아니면 내가 아직 이렇나 형태의 리무버에 익숙하지 않은 탓일 수도 있고요. 세라믹과 오일이 섞여있는 생각보다 단단한 제형의 물체로 큐티클을 문대는 것이었는데, 세라믹이 주 소재면 미세한 유리 가루가 살에 박히는게 아닌가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동아리방으로 올라가는 길에 슬랙을 확인했습니다. 교수님께 메시지가 와 있었어요. 어제 미팅에서 이야기했던 아이디어를 조금 더 생각해봤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아이디어를 더 디벨롭해주셨어요. 나도 가끔씩은 뭔가 떠올릴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동아리방에서는 엠준위들끼리 만나서 엠티 일정을 확정짓고 장을 봤습니다. 원래는 쓱 배송으로 펜션에 바로 배달을 보내려고 했는데 쓱 배송이 안되는 지역이더라고요. 분명 1학년 때 그렇게 했었는데 그 사이에 배송 가능 지역이 달라졌나봅니다.

2024. 02. 24.,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학생회관.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엠티 때 쓸 현수막을 주문했습니다. 명찰도 사이즈를 조절하고 인쇄해서 마무리했습니다. 레이어 스타일을 아무리 래스터화해도 인쇄가 이상하게 되더라고요. 3번 다시 인쇄한 끝에 레이어 스타일을 포기했습니다. 상업용 프린터가 아니어서 회색 표현이 이상하게 된 점은 아쉬웠지만, 전체적으로 긱스럽게 잘 나와서 만족스러웠습니다.

21시부터 CTF가 있어서 오래간만에 동아리방에 사람들이 많았어요. 복작복작한 모습을 보니 살아있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세미나를 준비했어요. 스타일도 약간 손 봤고요. 다른 페이퍼를 집어서 발표 자료를 만들기 시작한건 새벽 1시였는데 챕터 3개를 끝내니까 새벽 4시 반이 되어있었습니다. 아직 본 내용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수요일까지 준비할 수 있을 지 걱정이 많습니다.

때로는 나를 버리려 했고

바빠지면 우울은 다소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해결책이 아님에도 당장의 효과에 속아보고 싶어요. 약간 벌어진 틈으로 불쑥 튀어나와 여유를 망쳐도 후회하지 마세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권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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